인도 여행 준비 - 인도 역사 공부

이번 인도 여행의 준비에 앞서서, 문화재나 유적지, 인도 문화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기 위해 역사에 대한 간략한 공부를 하였습니다. 다큐멘터리와 인터넷을 통해 모은 자료를 정리하고, 다른 분들도 참고하자 올립니다.

역사를 시간 순으로 나열하며, 유적이나 문화와 깊게 관련된 부분 위주로 정리하도록 합니다.

1. 인더스 문명

인도하면 인더스 문명이 떠오릅니다.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이고, 인더스 강을 끼고 형성 되었죠. 인더스하면 인도라고 생각하시겠지만, 현재 인더스강은 파키스탄의 중심을 흐르고 있습니다. 이는 파키스탄과 인도가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인더스 문명은 비교적 최근인 1921년 영국의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 되었습니다. 매우 발달한 후기 청동기 문명이며, 고대의 도시로 개인집, 상점, 목욕탕, 화장실, 정밀하게 지어진 상하수도 시설까지 갖추었을 정도로 높은 문명을 갖추었다고 조사되고 있습니다. 이후 문명이 몰락하게 된 이유에 대해선 학설이 분분한 것 같습니다.

2. 갠지스 문명

기원전 1500년 경 중앙아시아의 유목 민족이었던 아리아인이 인도로 이동해 왔습니다. 이들은 인더스 강 유역으로 처음 이주했고, 갠지스 강까지 영역을 넓혀 갔습니다. 철제 기술을 바탕으로 강한 힘과 성장력(철제 농기구 등)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과시하고자 하는 이유와, 비교적 다수인 원주민을 다스리기 위해 카스트 제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카스트 제도는 4개의 계층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브라만 - 사제 계층
크샤트리아 - 왕족과 무사
바이샤 - 평민(농,공업 및 상인)
수드라 - 원주민 노예

여기서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의 상위 3꼐급은 아리아 인이었으며, 수드라는 원주민이었습니다. 이 외에 불가촉천민 계층이 있었는데, 이들은 카스트 계층에도 속하지 못하며 가장 더럽고 힘든 일을 하며 빗자루로 자기 발자국을 지워야 했고 엄청난 차별을 받았습니다.
현재는 법적으로 폐지 되었지만 아직까지 그 문화가 남아있을 정도로 카스트 제도는 강력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인도에는 소에도 카스트 제도가 있다는 점입니다. 인도하면 소를 신성시 하는 국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인도에서는 우유를 많이 생산하는 젖소는 브라만 계급으로 신성시 여기며, 우유가 잘 나지 않는 소는 천대 받습니다. 또한 황소와 숫소는 우유를 생산하지 못하고 일을하는 노예 계급으로 볼 수 있습니다.

3. 여러 국가 시기

이후 인도는 여러 국가의 시기를 지나치게 됩니다.
처음엔 도시 국가들이 형성되며 상당한 세력을 가진 국가들도 생겨나고, 이들 사이의 정복 전쟁도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이후엔 알렉산더가 침공하였고, 이를 통해 인도의 문화와 종교와 예술의 발전이 이루어 집니다. 간다라 예술이 발달하는 계기가 됩니다.
알렉산더 세력을 몰아내는 마우리아 제국, 굽타 왕조등을 거치며 인도 시기가 지나가게 됩니다.

자세한 설명을 안하는 이유는... 복잡하고 어렵고, 사실 이 시기에 주된 문화재들이 보이지 않습니다.(타지마할이나 등등)

4. 무굴제국

무굴제국은 이슬람 왕조로 1526 ~1857년까지 인도 지역을 통치합니다.
한 자료에 따르면 1600년 세계 GDP 22.5%를 차지하고, 1700년에 세계 1위로 부상할 정도의 부국이었다고 합니다. 무굴 제국은 건설 이후 약 200년간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왕조를 따라 역사를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대 - 바부르

바부르는 무굴제국을 창시한 1대 왕입니다. 무굴이란 의미는 아라비아어로 '몽고'를 의미하는데, 이는 바부르가 몽골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바부르는 몽골의 후손 티무르의 5대손이며, 그의 어머니는 칭기즈칸의 15대손이라고 합니다.

2대 - 후마윤

재임 초기에 많은 영토를 잃었지만, 페르시아의 도움으로 더 큰 영토를 회복한 왕.
델리에 있는 후마윤의 무덤은, 후마윤의 부인 하지 베굼이 후마윤을 기리기 위해 만든 무덤으로, 완벽한 대칭과 높은 아치 출입문 등으로 유명합니다. 후마윤의 무덤은 타지마할의 원형이 되었다고 합니다.

3대 - 악바르

악바르는 인도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왕이라고 합니다. 무굴 제국의 기틀을 다진 왕이기도 한데요. 가장 큰 업적은 이슬람과 힌두교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뽑았으며, 두 종교 문화의 조화를 이뤄냈습니다. 또한 중앙 집권체제를 견고히 했다고 합니다.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 붉은 성이라고도 불리는 아그라 성을 건축했습니다. 아그라 요새라고도 하는 이 성은 성벽이 이중으로 성을 감싸며 현재까지도 군사시설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후 샤 자한에 의해 화려한 건축물이 추가되며 증축되었습니다.

4대 - 자항기르

비이슬람교도에 대한 인두세를 폐지하고 많은 종교에 관대하며 문학과 미술을 보호해 문화을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5대 - 샤 자한

샤자한은 타지마할을 만든 왕으로 유명합니다.
무굴제국 황제는 정치적 안정을 위해 종족별로 황비를 들이는 것이 관례였고, 샤 자한도 여러 명의 아내가 있었지만, 다른 아내들과는 혼인 유지만 하며 뭄타즈 마할만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뭄타즈 마할은 샤 자한이 전쟁을 나갔을 때 14번째 아이를 출산하던 중 사망했으며, 이를 기리기 위해 아시아 각지의 값비싼 자재들을 통해 22년만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타지마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며, 인도를 대표하는 문화재이죠.

샤자한은 또한, 레드포트, 자마 마스지드를 건립하고, 아그라 성을 재구축 했습니다.

6대 - 아우랑제브

아우랑제브는 황위 계승의 권력 다툼을 통해 왕이 됩니다. 삼남이었던 아우랑제브는 장남 다라 시코를 공개 참수하고, 아버지를 아그라 요새의 탑에 감금한 뒤 왕이 됩니다.
아우랑제브는 엄격한 이슬람 교도로, 힌두교를 핍박합니다. 이를 통해 이슬람과 힌두 문화의 조화가 깨지고 대립이 발생하게 됩니다.

아우랑제브는 전쟁에 있어서는 천재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50여 년의 통치 기간의 절반 이상을 전쟁에 보냈으며, 무굴 제국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랜 전쟁과 인명, 재물의 소모로 국력이 약해졌으며, 아우랑제브의 사망 후에는 왕위 계승을 둘러싼 유혈 참극이 벌어지고, 혼란이 발생했습니다. 급속히 무굴제국의 붕괴가 일어나고 여러 개로 찢어지게 됩니다.
이후 유럽의 침입으로 국력이 약해지고, 1857년 세포이 항쟁의 진압 이후 영국의 직할지로 편입되어 영국의 직접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인도의 간략한 역사에 대해 정리해 보았는데요. 여행을 준비중이라면, 인도 문화 공부도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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